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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엔가입 30주년 학술회의 기조연설 (오준, 전 유엔대사) 2021-11-12 373 |
한국의 유엔가입 30주년 학술회의 기조연설
(2021.10.22 제주평화연구원)
오준 전 유엔대사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
- 2013-16년 유엔대사직을 포함해서 유엔대표부에 총 4차례 근무
- 유엔은 2차대전이 끝나고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72년 전 만들어진 국제기구. 유엔은 1945년에 창설되었지만 우리나라는 1991년에 유엔 회원국이 되었음.
- 우리나라가
유엔에 늦게 가입한 것은 물론 남북 분단이 원인. 북한은 통일이 된 후 남북한이 한 국가로 유엔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냉전이 끝나고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유엔가입을 더 이상 막지 않게 되자 91년 9월 남북한이 같은 날 유엔 회원국이 되었음.
- 1991년 남북한 동시 가입이 이루어진 것은 당시 국제사회의 큰 변화와 우리의 외교적 노력이 맞아떨어진
결과: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북방외교를 통해
소련,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였고, 국제사회에서는 1990년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 à 그렇게
해서 1990년 한.러 수교가 가능했고 한.중 수교도 논의되는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기
어렵게 되었음. 특히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수교를 하면 한국을 국가로 승인하게 되는데, 미·일의 북한 승인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한의 유엔
가입은 북한에 대한 국가 승인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는 측면이 있으니까 대북 설득이 가능했을 것으로 봄.
-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유엔 가입은 한반도 평화·안보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음: 유엔 가입 자체가 북한의 개방과 변화에 기여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유엔이
각종 현안 문제를 다루는데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지원과 압박이 동시에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음. 2006년 이후 핵문제로 유엔의 제재를 받게 된 것이나, 2003년
이후 유엔의 연례적 북한인권 문제 토의에서 볼 수 있듯, 북한과 같은 폐쇄적 국가에도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국제적 압박은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평가
<우리의 유엔 외교>
- 유엔
가입 이후 우리나라는 그간의 가입 지연을 만회하려는 것처럼 열심히 활동: 안보리 이사국 두 차례, 유엔 사무총장과 총회 의장, 경사리 의장 배출 (우리의 열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이 독립하자마자 유엔에 가입한
데 반하여 우리는 정부 수립 후 43년이 지난 후 ‘준비된
회원국’으로 유엔에 가입한 덕분)
- 유엔
가입 후 30년간 유엔 내에서 존재감을 높이는데 성공했지만, 이제는
질적인 성장과 기여 확대, 즉 유엔외교위 내실을 추구할 때: 그러려면
우리가 국가로서 추구하는 국가적 가치와 철학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 필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유엔에서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추구한다면, 그것이 정권이 교체되면 수정될 수 있는 단기적 외교 정책이 아닌 장기적 국가
철학에 바탕을 두어야 함. 국제사회에서 국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
<유엔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우리의 기여>
- 끝으로, 우리는 유엔과 밀접한 관계 속에 성장해 온 국가이자 외교적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하는 중견국가로서, 유엔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강화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람직: 특히 오늘날과 같이 분쟁, 대유행병,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가 점증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세계적 거버넌스가 강화되는 것이 우리는 물론이고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기 때문
- 흔히
유엔이 잘 하고 있는 일들(수많은 분쟁 예방, 인도적 지원, 인권 보호 등) 보다 못하고 있는 것들(시리아, 미얀마 등)에
주목하기 쉬운데, 사실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엔은 상당 수준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제공
*함마슐드 사무총장(1954): 유엔은 인류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지옥으로 가지 않도록 만들어진 것
- 오랫동안
유엔과 관련된 일, 소위 다자외교를 다루어 오면서,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 유엔이 과연 세계정부로 발전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는 않지만 될 수 있다고 봄.
- 유엔이
세계정부가 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많은데, 가장 어려운 난관은 현대 국제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는 국가주권
평등의 원칙이라고 생각: 지난 수백 년간 국제사회는 모든 국가가 인구나 국력에 관계없이 평등한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주권 평등의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음.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원칙은 상당히 인위적. 국가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인간이 만든 것인데, 왜 국가는
모두 동일한 주권을 가진 것으로 인정해야 하는 걸까? 유럽에서 처음 국가주권 평등의 원칙이 생겼을 때
작은 규모의 도시국가들도 큰 국가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취지가 반영되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를
신성불가침의 원칙으로 다루어서는 국제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
- 또 하나의
고려사항은 민주주의의 개념을 국제사회에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문제: 인간 개개인의 자유와 권한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인간이 아닌 국가들이 평등하다는 원칙은 서로 맞지 않음. 인구가 많은 국가의
국민은 상대적으로 작은 권한 행사
- 역사적으로
보아도 주권평등의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려 하였던 국제연맹은 결국 강대국들의 불참과 외면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음. 그러한 교훈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유엔은 강대국(전승국)들의 이해, 즉 국제적 현실을 제도에 반영했으나, 이런 현실 반영은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안전보장이사회에 집중 ->안보리만이
모든 회원국을 강제적으로 구속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며, 5대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이라는 특권 보유
- 이에
따라 유엔은 강대국의 참여를 확보하였고, 지난 76년간 국제
평화 유지의 기능을 수행해 왔지만, 국제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한계 노정: 그러한 문제점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현실”을 안보리라는 한 기관에만 집중해서 지나치게 반영.
- 세계화가
빠는 속도록 진행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인류가 처한 도전과 문제들은 평화와 안보에만 있는 것이 아님. 평화와
안보 분야에서는 강대국들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하게 반영해 놓아서 중요한 국제 분쟁에 거부권 사용으로 유엔의 행동이 제약되는 일이 흔하고, 경제, 사회, 환경, 인권 문제들에 있어서는 유엔이 구속력 있는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행동의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경우가 많아짐. 경제 분야에서 G20같은 유엔 외부의 비공식 협의체가 생겨난 것도
유엔 제도권 내에 경제 대국들의 특권을 인정해 주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음. 이렇게 보면, 유엔 전체가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안보리에서의 “현실 반영”은 완화시키고, 유엔 내 다른 기관에서의 “현실 반영”은 강화시킬 필요.
- 유엔이
세계정부처럼 강화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오늘날처럼 주권국가들 간의 갈등과 대립이 심한 상황에서 너무 이상적인 목표로 들릴지 모름. 궁극적으로는 국가들의 주권을 인정해 주면서도 인구나 국력의 차이가 반영될 수 있는 거버넌스 체제를 찾을 수
있을지에 귀결될 것 -> 여기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예가 미국의 연방제도나 EU의 의사결정방식. 미국은 50개
주의 개별적인 자치권을 인정해서 연방 상원은 각 주의 인구나 면적에 무관하게 똑같이 2명씩 선출한 상원의원으로
구성되는 한편, 대통령과 하원은 인구에 기초한 선거를 통하여 선출, 즉
인구가 많은 주는 대통령과 하원의원의 선출에 있어서 더 큰 영향력 행사. EU도 원칙적으로 모든 회원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가입하지만, 이사회는 회원국 55%, 전체
인구의 65% 찬성이라는 이중다수결 제도를 적용하며, 유럽의회는
인구수에 따라 의석 할당. 즉, 주권 평등의 원칙이 인구와
국력이라는 현실과 타협.
- 유엔이
세계정부가 되려면 이처럼 국가주권 평등의 원칙과 국제사회의 현실 간의 타협점을 찾는 지혜 필요. 이러한
과정에서 국력이나 인구에 있어서 세계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들은 자연히 주권 평등이 더 존중되기를 바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현실의 반영을 더 중시할 것. 세계 26위의 인구(남북통일시 18위)와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우리나라로서는 유엔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더욱 발전되어 인류가 직면한 각종 지구적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람직. 우리의
국익이 한반도를 넘어 인류 전체의 공동 발전에 있기 때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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