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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필담] 시푸트 황제와 한반도 안전보장

2024-05-14


시진핑 주석과는 개인적으로 악연(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이다. 일본 주재원 시절 동아시아 정세를 조사해서 리포트하는 업무를 수행했었다. 우리나라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일본 정부 요원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는 정보를 몇 분이긴 해도 먼저 알게 된 일도 있었다.

당시 일본 정가의 중국 정치 후계구도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후진타오 이후는 리커창이라는 보고서를 본사에 타전했다. 아쉽게도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었다. 강택민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던 태자당 손을 들어주었고, 그 결과 시진핑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시진핑 씨가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오보’의 기억이 늘 따라 붙는다. 당시 7천만명이 넘는다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은 등소평 이후 중국 사회개조를 선도하던 엘리트집단으로 이들의 지지를 받던 리커창의 집권을 예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본 정객들은 줄지어 리커창과 접견 사실을 홍보하고 있을 때였다. 팬더 이미지로 ‘하방’을 견뎌내며 꿋꿋이 부활한 인물의 손을 중국 인민들이 들어주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후진타오가 공식석상에서 끌려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커창은 세상을 떠났다. 시 황제 세상이 되었고 청나라 이후 중국의 국제 사회 위상도 하늘을 찌르고 있다.

푸틴이라는 이름을 30년 가까이 뉴스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무력을 기반으로 찬탈한 권력 유지가 어려운 일은 아닐지라도 기이한 장기 집권이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소련 개혁에 동참하면서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무엇보다 KGB라는 공포 브랜드를 적절히 활용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수단이고 이를 대중의 지지로 연결 시킨 것은 그의 역량과 자질의 산물이겠다.

레닌그라드를 근거로 하는 가정사에서 이 지역 출신인 차이코프스키나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들을 때 그의 집안 내력과 성장과정을 떠올려보게도 된다. 할아버지가 레닌과 스탈린의 전속 요리사였다는 사실은 어린 그가 권력을 동경할 충분한 에피소드를 제공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잠수함 부대에 근무하고 독일 폭격으로 한 쪽 팔을 잃은 것이나 그의 형이 레닌그라드 봉쇄 중에 전염병으로 사망한 일화를 자신의 정치적 재료로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을까. 소련 공무원들의 폐습을 척결하고 올리가르히(재벌 집단)를 해체하는 등 긍정적인 면과 우크라이나 전쟁 도발과 핵무기로 서방 세계 위협 등 부정적인 면이 푸틴 황제와 우리들의 앞날에 교차될 것이다.

트럼프를 대통령이라 할지 황제로 칭할지 따질 만한 가치는 없다. 오늘날 아메리카 사회가 아무리 망가졌다 해도 민주주의의 마지막 피난처에서 전제군주가 나올 수는 없다. 그의 말과 행동에서 로마 제국의 괴팍한 황제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 우리들 잘못일까. 자신의 정치 기반인 의사당에 난립한 군중들과 같은 편에 서 있는 그에게 어떤 호칭을 부여하는 게 적절할지. 푸틴과 김정은이라는 인물과 ‘케미가 맞는’ 건 아닌지. 돈을 안내면 진짜로 주한미군을 철수 시킬지. 여러가지가 의문이다.

일본에서 ‘만일 트럼프가 당선된다면’이라는 줄임말 ‘모시토라’가 유행하자 타임지 표지에 ‘IF HE WINS’라는 제목이 붙었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한반도 안보,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모시토라’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우리도 마련해야 할텐데 기대할만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성추문 입막음 재판이 어떻게 진행될 지에 따라서 트럼프 소멸에 대한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대선 경쟁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지면 바이든도 동반 퇴진하고 새로운 인물들끼리 경쟁할 것이라는 전망도 미국 사회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시푸트’ 황제가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 되어 간다. 이들의 세 나라가 지구의 주인이라고 하면 누가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을까.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과연 대한민국의 국가발전 전략이란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한 싱크탱크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과학적 분석과 합리적 전망을 내고 이를 실현할 국민적 지지가 전달될 수 있는지 작금의 현실에 의구심이 든다. 힘 없는 여권과 분별력을 상실한 야권이 협치라는 걸 할 수 있을지 도통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중앙 정치가 이러고 있으니 지역 정가는 무엇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세계가 하루 하루 치열하게 정보전과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는 ‘슬슬 2026년 지자체 선거’나 2027년 대선을 어떻게 치룰까’에만 급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산업 현장 안전사고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회적으로 어이없는 재난이나 흉악 범죄에 대한 국가적 대응체계 확충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루하루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소득 분포로 보면 상위층이지만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계층이 다수라는 통계가 나왔다. 여전히 위를 쳐다보면서 ‘아직 부족하다’는 상대적 결핍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이다. 시푸트 황제와 북핵 앞에서 한반도 운명의 촛불이 언제까지 켜져 있을지 걱정이다.

출처 : 대경일보(https://www.dk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42078)
*정연태 회원님의 칼럼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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