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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 무용론(無用論)과 거부권 문제 (신동익, 前오스트리아 대사) 2022-06-28 371 |
유엔 안보리 무용론(無用論)과 거부권 문제 신동익 1945년 10월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 대전의 재앙으로부터 다음 세대들을 구하기 위해 유엔(국제연합)이 창립된 후 77년이 지났다. 그러나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계속되고 있는 전쟁 상황에서 아무런 역할을 못해 국제사회에서 유엔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유엔이 강제력을 발동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결정을 5개 상임이사국(P5) 중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가 자국에 불리한 결의를 채택하지 못하게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보리는 헌장 7장에 근거하여 평화의 위협, 파괴 및 침략행위에 대해 경제적 제재 또는 물리적 강제 조치를 결정할 수 있는 유엔의 중심 기관이다. 또한 헌장 25조 및 48조에 따라 회원국들은 안보리의 결정을 수락하고, 이행할 의무를 지게 되므로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거부권으로 인해 결의안이 채택되지 못하는 경우 분쟁 해결과 같은 중요한 안보리의 기능을 상실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유엔 출범 직후부터 자유진영과 공산권진영 간 냉전으로 인해 안보리에서 거부권 행사는 빈번하였고, 당시 소련의 Molotov 외교장관의 별명이 ‘Mr. Veto’라고 불리어질 만큼 소련의 거부권 횟수는 다른 상임이사국들 보다 훨씬 많았다. 2022년 5월 까지 5대 상임이사국 중 러시아(구소련 포함)는 120회, 미국은 82회, 영국은 29회, 중국과 프랑스는 각기 17회의 거부권 사용 기록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시리아 문제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에 대해서만 16차례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미국의 거부권은 대부분 이스라엘에 대한 규탄 및 제재 조치 반대에 사용해 왔다. 거부권(veto)은 라틴어로 금지(forbid)한다는 의미로 이 같은 안보리 거부권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 유엔 창설을 주도한 Franklin Roosevelt 미국 대통령이 5개 전승국들에 대해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즉, 국제 평화와 안전을 책임지는 안보리의 결정에 5개 상임이사국 중 한 나라만 반대해도 합의하지 못하는 견제 장치를 통해 전승국들의 이해(利害)를 보장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또한 2차 대전 말기에 미국은 독일과 일본의 항복을 유도하기 위해 소련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었으며, 1945년 2월 Yalta 회담에서 미·소 간에 유엔 창설과 거부권 문제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적으로 Franklin 대통령은 1919년 1차 세계대전 직후 Woodrow Wilson 미 대통령이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을 주창하고서도 미 의회로부터 연맹 헌장을 비준 받지 못하고, 또 다시 2차 세계 대전을 맞게된 쓰라린 경험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 의회를 설득하여 유엔 헌장을 비준받기 위해서는 컨센서스 형식의 국제연맹 의사결정 방식이 아닌 미국이 보다 더 강력한 결정권을 갖는 수 있는 거부권 제도를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승국 중심의 강대국들을 유엔을 통한 집단안전보장(collective security) 체제에 관여시키기 위해 거부권 부여가 부득이 했다는 논리도 가능하지만, 비민주적인 거부권제도는 1945년 샌프란시스코 유엔 헌장 협상회의에서도 다수 국가들이 이견을 제시하여 합의에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안보리 회의에서 5개 상임이사국은 ‘주인’(master)이고, 10개 비상임이사국은 2년간 활동하다 가는 ‘방문객’(visitor)에 불과 하다는 자조적인 비상임이사국들 간 농담도 오고간다. 안보리가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 속에 현재의 국제상황에 맞게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왔으며, 1994년부터 총회에 서 공식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가장 중요한 이슈인 거부권 문제에 대해 다양한 안들이 제시 되었으나, 기존 상임이사국들의 이견으로 거부권의 포기가 아닌 제한하는 방안에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관련 안보리 결의안이 러시아의 반대로 부결된 이후, 2022년 4월 유엔 총회는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10일 이내에 총회를 개최하여 거부권 행사 이유를 설명토록 하는 결의안을 컨센서스로 채택하였다. 이는 상임이사국의 반대로 안보리가 작동하지 못하게 되면 총회에서 거부권 사유를 청취함으로써 상임이사국을 압박하는 절차를 만든 것이다. 상임이사국의 안보리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 사유를 공개적으로 설명토록 요구하는 자체가 심리적 부담을 갖도록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절차에 따라 북한의 최근 ICBM 실험 관련 5월 26일 대북제재 안보리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자 6월 8일 총회가 개최되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총회에 출석하여 결의안 반대 사유로 추가 제재가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악화 시킨다는 점과 한반도 긴장 고조 등을 설명하였다. 이후 주유엔 중국대사는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의 핵심 목표로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원치 않는다면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중국의 반응을 추측하지 말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둘째, 프랑스와 영국이 1990년 대 르완다와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같은 반인륜 범죄 차단을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상임이사국들의 거부권을 제한토록 하자고 제안하여, 유엔 내 '책임성·일관성·투명성을 지지하는 그룹'(ACT 그룹)이 구성되었다. ACT의 구상은 50개 이상의 유엔 회원국이 요청하는 문제의 사안에 대해 유엔사무총장이 검토 후 인종 학살이나 전쟁범죄로 판명될 경우, 상임이사국들이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발동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상임이사국 특권을 침해하는 어떤 제안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미국도 유엔 창설 때부터 상임이사국 거부권의 당위성을 주장해온 만큼 이에 적극 동조하지 않고 있다. 셋째, 유엔회원국 자격 박탈문제도 헌장의무를 계속해서 위반하는 국가는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총회가 제명할 수 있으나(헌장 6조), 상임이사국은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다만 지난 4월 7일 유엔 총회는 우크라이나 ‘부차’ 주민 학살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상기와 같은 방안들의 실행도 쉽지 않겠지만 유엔 헌장에 따른 법적인 개정 절차도 난관이 될 수 있다. 헌장 규정상 거부권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헌장 109조에 따라 총회에서 회원국 2/3이상의 동의와 5개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회원국 2/3 이상의 국내 비준이 요구되므로 이 또한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안보리 개혁 논의가 벌써 30년이 되고 있지만 회원국들 간 합의를 보기까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과거 비공식 회의에서 Susan Rice 전 주유엔 미국대사는 안보리 개혁은 우리의 세대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개인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바라는 미국과 상임이사국들의 속내를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안보리의 거부권 제도 변경은 미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보리 무용론을 극복하는 궁극적인 해법이 나올 때까지는 총회 역할 강화 등으로 안보리에서 상임이사국의 독단적인 거부권 행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인권이사회와 같은 여타 유엔 기구 및 사법 기구(ICJ, ICC 등)와 국제 NGO 등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압박’(name and shame)을 지속해 나가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안보리가 거부권 문제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좌절감으로 유엔을 대체할 새로운 국제기구를 창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유엔이 없는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라고 반문을 하였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강대국들 간 경쟁으로 안보리가 제대로 대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국제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현안(기후 변화, 팬데믹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설 기구로서 유엔이 필요한 공공재를 제공하고 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학자인 Paul Kennedy도 유엔을 ‘인류의 의회(Parliament of Man)’라고 지칭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는 유엔과 같이 도덕적 권위를 갖은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1945년 창설된 유엔은 같은 해 독립 후 시작된 한반도 문제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다. 유엔의 후원으로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에 대해 안보리가 북한군 격퇴를 위한 유엔군 파병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1949년 이후 대한민국의 유엔 가입 신청이 구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다행히 냉전 종식과 우리의 북방외교의 결과로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게 되었다. 유엔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대한민국은 2006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였고, 안보리 이사국 세 번째 진출(2024-25년 임기)을 앞두고 있다. 국제사회의 ‘중추국’(global pivot state)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거부권 문제가 있더라도 비상임 이사국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함으로써 안보리 기능 회복에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이 2023-24년 임기 안보리 이사국으로 선출됨으로써 약 5년 간격으로 12차례 비상임 이사국이 된 것을 참고하여, 우리도 국력신장에 걸맞게 최소 10년 간격으로 이사국에 진출할 수 있는 준비와 다자외교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신동익 대사는 과거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겸 주비엔나 대표부 대사, 다자외교조정관, 국제기구국장,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로 다자외교 및 비확산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현재 연세대 국제대학원과 국립외교원 외교아카데미에서 강의 중이다. |
첨부파일
외교광장 2022-12신동익.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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